피 없는 상처
- 작성자 : 신현우목사
- 24-12-08 16:59
피 없는 상처
어머님이 제 손을 보면 “이게 목사의 손이냐?” 이런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목사의 손이 어떤 손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뽀얗고, 주름 없는, 순정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긴 손가락을 말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험악한 도구들을 가지고 노느라 손이 거칠어졌습니다. 찔리기도 하고, 찢어지기도 하고, 망치에 찧기도 하고, 불에 데기도 했었습니다. 한날은 칼을 잘못 다루어서 왼손 엄지손가락 끝이 잘려나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손 모양은 험악하지만 그래도 그 상처들은 다 아물었습니다.
가끔 TV에서 이혼 직전에 마지막 기회라고 전문가에게 상담하는 부부들의 삶의 현장을 기록한 촬영장면을 보고 있으면, 사랑해서 결혼한 두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지옥에서 만난 원수처럼 살아갈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전문 상담가들이 여러 가지로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항상 종착지는 어렸을 때 부모에게 받은 상처들입니다. 피 흘리지 않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아물지 않은 이 숨겨진 상처들이 현실의 관계에 악성 종양들을 만들어냅니다.
계엄령선포라는 엄청난 일이 있었습니다. 미디어들은 핵폭발 후에 불어오는 거센 후폭풍을 한 손에 잡아내려는 듯 연일 긴급속보를 전합니다. 가뜩이나 유튜브 좀 그만 보려고 하는데, 온갖 사람들의 귀와 눈을 더 사로잡고 있습니다. 피 없는 소동이었지만 우리에게 적지 않은 상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날 민중항쟁으로 자녀를 잃고, 억압당한 사람들은 이 소동으로 절여졌던 심장의 아픔이 다시 재현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상에 유례없을 정도로 급성장했고, 빨리 민주화를 이루어냈습니다. 미국대학에서 한글을 배우는 사람이 한해 삼만 명이 넘고, 전 세계가 한국의 문화에 들썩이고 있습니다. 이런 급성장 속에도 우리가 경험했던 상처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주사파” “종북세력” “빨갱이”와 같은 단어들은 남북 대치 가운데 우리가 얼마나 큰 아픔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말들입니다. 어른들이 겪었던 이 아픔들이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못했고,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정당정치와 권력다툼 속에 있습니다. 이런 현실은 마치 고성 지르며, 물건 내던지는 부부싸움 한 가운데, 엉엉 우는 7살 된 딸아이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피 없는 상처를 앓는 아이도 결국에는 또 다른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피 없는 이 극심한 소란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또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잘 아문 상처들이 우리 자녀들의 행복한 가정을 보장하듯, 국가의 상처들이 잘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정치와 권력은 다음 세대를 걱정해야 합니다. 세상뿐 아니라, 우리 인생도 내란과 소란과 폭동과 전쟁이 끝없습니다. 성탄의 십자가가 절실합니다.
댓글목록